“만약 아들을 입양으로 포기한다면 그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또한 양엄마는 저에게 아들을 입양 보내도 내가 보고 싶을 땐 언제든지 아이를 볼 수 있을 것이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했죠. 저를 언제든지 반길 거라고 했어요. 입양동의서에 사인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그녀는 어조를 바꿨어요. 갑자기, 저는 아이를 포기한 ‘못된 년’이 되었죠. 그리고 ‘무책임한’ 부모가 되었죠. 내 아들은 이제 열 살이 됐는데, ‘그녀’는 남편과 이혼 후 2번이나 재혼을 했고 그녀의 친 아들은 내 아들에게 성행위를 강요했어요!!!! 그러나 법원은 내 아들의 양육권을 그녀에게 돌려 주었고!!! 이젠 그녀나 나나 둘 다 그 애를 전혀 보지 못한답니다.” 

– 머린다 제임스, 캔서스


 “21살 때 나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불행히도, 그 당시 저는 너무 순진해서 제가 가진 권리를 알지 못했어요… 저는 입양을 원하는 커플들의 손에 의해 놀아났어요. 그 커플은 내가 이혼 후 자립하고 군에서 나올 때까지 나의 아들을 몇 달간 돌보아 주겠다고 했죠. 그들은 18개월 된 나의 아들을 데려갔고 이제 그는 7살이 되었는데 저는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제발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이런 짓을 하게 허락하지 마세요. 이용 가능한 법적지원이 무엇인지 찾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  플로리다의 슬픈 엄마 제니퍼로 부터, 2001년 6월 ”


 “네 그렇습니다. 입양을 고려하고 계신 모든 분들 어리석은 짓 하지 마세요. 전 멍청하지 않았어요. 양부모들을 아무렇게나 고른 게 아니죠. 그들은 완벽했어요. 젊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가정조사 결과도 훌륭했죠. 친절했고 동정심이 많았으며 공개입양의 장점을 늘어놓으며 심지어 딜런과 내 여동생과의 관계도 열어놓겠다고 했어요. 대부분의 거짓말쟁이처럼 그들 또한 능숙하게 거짓말을 했죠. 전 완전히 속아 넘어갔어요.”

– Adoption Insights에서 케이티(Kati)


“아이를 사촌에게 입양 보내며 공개입양을 약속 받았어요. 나는 약속을 지켰지만 사촌은 잔인하게 약속을 깼어요. 필로폰 중독으로 인해 이제 여덟 살이 된 나의 딸을 반복적으로 위험에 처하게 했어요. 사촌은 1998년 필로폰을 직접 제조하다 집을 태웠고, 내 딸은 4, 5살 때 성추행과 학대를 당했기 때문에 현재 법원이 심의 중에 있어요. 나의 사촌은 여전히 싱글이고 불안정한 알코올 중독자이며 마약 중독자입니다. 사기와 부당한 위압감, 위협적인 기만, 마약/대마초,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잔인한 정신적 감정적 학대가 나와 지금 8살인 나의 딸은 겪고 있어요. 아무도 아이를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 텍사스에서 소냐 턱커(Sonya Tucker)  


 “저는 입양 보낸 한 아이의 친엄마입니다. 제가 16살 때 엄마는 제가 낳은 아이를 복지부 관련 사람들에게 넘겼습니다. 나의 딸을 데려간 뒤, 그들은 내게 다시는 아이를 데려올 수 없으며 입양을 원하거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누군가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학교의 한 친구가 자신의 오빠와 그의 부인이 아이를 가질 수 없어서 나의 딸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입양후에도 내가 딸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그들은 내가 딸을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3년 만에 이혼을 했고 나의 딸과 함께 다른 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나의 딸은 27살이 되었지만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나의 딸은 내가 그녀를 원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 사우스 캘리포니아에서 도나(Donna)로부터


 “12년 전에 나의 첫 아들을 입양 보냈습니다. 현재에도 텍사스 샌 안토니오에서 운영중인 한 기관을 통해 입양 보냈습니다. 원래 준-공개 입양으로 진행되기로 했었기 때문에 나는 최소한 일년의 한 번쯤 아이의 사진을 받아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아들이 한 살 때 그의 양부모 밥(Bob)과 마리안(Marianne)으로부터 두 장의 멋진 편지와 아이의 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그들은 나에게 어떤 것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입양기관에 10년 넘게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 뭔가 해달라고 간정해 왔지만 그들은 매해 똑 같은 핑계만 둘러댔다. 나는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나에게 행해진 것은 불법은 아닐 지라도 극도로 비윤리적인 것이다. 입양기관은 내가 그들과 양부모에게 잘못 기대하게끔 유도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어리다는 사실과 무지했다는 사실을 이용한거죠. 내 아들의 이름은 벤입니다. 그는 이번 6월에 13살이 됩니다. 나는 아이를 매일 생각하며 매일 그가 괜찮은지 궁금해하며 살아간다.” 

– 미국 텍사스에서 히더 웹(Heather Webb)


“나는 아들이 18살이 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 아이가 사는 곳이라고 알고 있던 주소로 편지를 보냈다. 아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그리고 일년에 한 번 사진을 받는 다는 점에서 이것은 ‘공개 입양’ 이었습니다. 나는 최소한 아이가 표면상으로라도 건강한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으나 사진 속의 그의 모습은 무엇인가 화가나 보였습니다. 편지가 반송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달되었고 아이로부터 어떤 답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분노와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도 새로웠고 남편이나 나의 오래된 친구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노력은 했지만요. 나의 딸에게 오래 전 내게 남자아기가 있었지만 나와 함께 살 수 없었고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딸아이에게 이 사실은 감당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다른 엄청난 공포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딸아이가 내가 아들을 입양을 보내며 포기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물건처럼 다루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란 것이었습니다.”

– 앤 


“나의 가족은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서류에 사인을 하게 하려고 내가 아이를 보고 싶은 만큼 아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했습니다. 그 당시 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현재 나의 아이는 먼 곳에서 다른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나는 그들을 한번도 본적이 없으며 또한 대화도 나눠본 적이 없습니다. 매일 나의 가슴은 찢어지고 내가 무력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의 아이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 텍사스에서 섀넌(Shannon)으로부터 


“양부모는 내게 한 달에 한번 전화를 하는 것과 사진을 보내줄 것을 약속했었어요. 그러나 어떻게 되었을까요? 현재 그들은 전화번호를 바꾸었고 나는 사진을 더 이상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들은 이제 거의 생후 4개월이 되어갑니다. 그들은 내가 이 세상에 있었는지 조차 잊고 싶어하죠. 소중한 아들이 없이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마다 나의 가슴은 매번 찢어집니다. 내가 느끼는 것을 표현 할 말 조차 없습니다.” 

– 버지니아에서 낸시 홀톤(Nancy Horton)으로부터









Integrating their Mothers into their Lives  입양된 딸들, 자신의 삶 속으로 엄마를 받아들이다.

스트라우스와 헌 그리고 사피안은 마침내 그들 생모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엄마들을 그들의 삶에 초대할 수 있었다. 자신처럼 입양되어 길러졌던 생모 리의 생모, 즉 스트라우스의 외할머니를 찾는 것을 도와준 것이다. 

    "엄마와 나의 재회와 엄마와 할머니의 재회에 대한 나의 느낌은 너무도 달랐어요. 또 한 명의 할머니가 있다는 것은 그다지 불경스러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지요. 완전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었어요.

그러나 할머니 메리에게 느끼는 이 편안한 감정은 나로 하여금 그때까지 대면 대면했던 나를 낳아 준 엄마, 내가 결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엄마와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했어요."

할머니는 내가 양부모와 생모를 마치 한 손에는 파란색의 찰흙이 든 통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빨간색의 찰흙이 든 통을 들고 이 둘은 결코 아무 상관이 없는 두 개의 다른 통이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했어요.

그러나 그 두 개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지요. 같은 것이었고 서로 연관되어 있었던 거에요. 재회한 할머니는 가족에 대한 나의 관점을 바꾸어놓았어요. 할머니 덕분에 나는 보라색 찰흙을 만들 수 있었지요."  

헌은 엘렌에게 이렇게 썼다.

    "나에게 분명해 진 것 중 하나는 입양되어 성장했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에요.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난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특별한 경험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했어요.

간혹, 나는 (나를 낳아 준 또 다른 한 쌍의 부모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면) '생물학적인 부모' 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 단어는 내게 인간미가 없고, 의학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을 주었죠.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생물학적 가족' 을 설명하기 위해 '뿌리' 니 '출생기원' 이니, '가족' 이니 '엄마' 니 하는 감정을 자극하는 단어들을 사용할 때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내가 일부러 내 삶에서 쳐내버린 이러한 단어들이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정말 싫었어요.

(생모 엘렌의 원가족들과 만난 후) 엄마와 엄마의 가족들과 나와의 연결고리를 인식하는 나를, 그리고 엄마를 나의 엄마로, 거스와 잭을 나의 남동생들로 생각하는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사피안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리하여 그 긴 여정은 과거에는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원래의 아이, 가족, 그리고 자아가 수렴되는 연속체, 재결합하고 또 다시 입양되는 것과 같은 형식의 재회로 계속되었죠.

…저는 마침내 많은 것에 있어서 좀 더 명료해졌어요. 마치 진흙이 사람들의 생각이나 주어진 환경에 맞게 빚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고정된 형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란 것이죠.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부분적으로 유전된 것이죠. 즉 뭘 좋아하는지 또 싫어하는지, 무엇 때문에 슬퍼하는지 기뻐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우리가 어떻게 순간순간 사고하는지, 바깥 세상과 내 안의 세상 이 두 곳에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는 모두 부분적으로는 유전된 것이죠. 

레이더스 집안과 사피언스 집안, 두 가족 사이에서 저는 한 부모가 여러 아이들을 가질 수 있듯이 정도는 다르지만 한 아이가 여러 부모를 혹은 가족들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여러 개일 수 있거나 아님 전혀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죠. 그러나 서로 보완하는 모든 것들이 합쳐져 전체를 만드는 것이에요."

필립스는 생모와의 관계를 진전시키는데 소극적이었다. 슬프게도 홈스와 딘 그리고 리프톤은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홈스와 리프톤의 생모는 사망했고 딘의 엄마는 딘이 그녀를 거부한 이후에 딘과 어떤 관계도 맺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두번의 출생(Twice Born)이 출간되고 20년이 흘러 리프톤은 이렇게 회고했다. 

    "양부모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두 개의 삶을 오갔는데 그것이 어떻게 그들과의 진실한 대화를 불가능하게 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양부모도 제도의 피해자인데 그들을 배신하는 것에 대한 나의 내면화된 죄책감과 두려움은 잠에서 깨어난 뒤 찾게 된 나의 생모를 만난 이후 너무도 나를 압도하는 것이어서 나는 다시 십 년을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처음으로 나를 낳아준 엄마를 만난 이후 엄마를 밀쳐낸 것은 나를 거부했던 그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오래 동안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았는데 나를 다시 잃었다는 생각이 아마도 엄마를 다시는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게 한 이유가 된 거 같습니다. 엄마와 딸,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다시 만났지만 우리는 결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서로 붙잡아주지 못했습니다."


Lessons for Mothers  엄마들을 위한 교훈들

'재결합' 이라고 부르는 이 놀라운 경험을 통해 내가 확신을 하게 된 것은 비록 친생가족 (natural families)과 입양가족은 각각 어떠한 사물이 거푸집을 통해 만들어졌거나 또는 용접되어 만들어진 것처럼 주조된 방법은 다르나 서로를 묶고 있는 결속감은 원가족이나 입양가족이나 동일하게 강하다는 것이다. 화가 났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었다. 나는 딸에게 나의 삶과 나의 마음을 온전히 내 보였다.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딸과 달리 불쑥 어딘가에서 엄마라고 나타날 리 없는 현재 나와 살고 있는 내 아이들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결국 난 그 딸로부터 내쳐졌다.딸은 종종 "나는 입양되어서 기뻐요.", "엄마는 옳은 결정을 한 거에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들은 나의 가슴을 후벼 판다. 정말 내 딸은 입양기관에서 선택한 어떤 여성이 나보다 나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마침내 나는 내 딸에게는 가족이 둘 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우리의 관계를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식은 변화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더 이상 입양 가족이 내 딸의 인생에서 사라진다거나 아니면 내 딸이 내 인생에서 사라질 거 라는 환상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만든 관계에 대한 확실함 덕분에 기다림과 슬픔은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관계가 명료해지면서 갈망이나 슬픔들은 사라졌다. 나는 ‘왜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대신 ‘지금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2007년 여름 내 딸과 막둥이 손주가 왔었다. 둘째, 셋째 손주는 몇 주 뒤에 왔었다. 몇 달 후 나는 큰 손주가 공부하는 대학에서 그 애를 만날 것이다. 마치 평범한 보통 가정처럼. 그러나 나는 내 딸이 또 다른 가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돌아가신 딸의 양엄마는 만나볼 수 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아버지가 원한다면 그를 만나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딸과 재결합을 했거나, 딸이 다시 관계를 맺기를 거부하거나 간에 모든 엄마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대에 올린다. "그 말이 아니라 이 말을 했어야 했나?", "생일선물을 보낼까, 아니면 카드? 아니, 아무 것도 보내지 않는 것이 나을까?"

나는 이런 엄마들에게 장담하건대 비록 딸들이 거리를 두려 하거나 연락을 끊고자 하더라도 그들의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엄마는 항상 자리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책하지 말길 바란다. 그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입양 보낸 딸들도 강한 감정적 갈등을 겪고 있다. 태어나서 거부 당했다는 것, 양부모를 배신한다는 죄책감, 가족이 둘 이라는 혼란, 그리고 자신이 누굴까 하는 불안감 같은 것이다. 

엄마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 이 질문을 미국입양인협회 전 회장이었던 디로레스 텔러(Delores Teller)에게 던져보고 싶다. 텔러는 포틀랜드(Portland) 심리치료사이며 1968년에 아들을 입양 보낸 의료 사회복지사였다. 그녀는 이런 충고를 하고 있다. 

    "지지모임에 나가거나 개별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하세요. 당신의 딸은 자신의 필요를 위해 당신과 재회한 것이지 당신의 아픔을 듣기 위해 만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세요."

당신의 부모로서의 역할을 되찾으세요. 하지만 너무 큰 역할을 하려 하지 말고 작지만 당신이 원하는 역할을 분명히 말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마치 떡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처럼 관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려 해서는 안 되요. 딸은 어쩌면 당신과의 관계를 거부할 지 몰라요. 하지만 당신은 딸을 사랑하며 그냥 거기에 있을 수 있어요. 

당신은 자신의 삶에서 잃어버렸던 부분과 예전의 관계를 되찾고 싶어하지만 당신의 딸이 노력해야 할 부분까지 당신이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관계에 시간을 주고 그것은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것이란 사실을 존중하셔야 합니다. 딸로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거나 당신을 엄마로 받아들이고 딸이 낳은 아이의 할머니로 받아들일 것을 딸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딸과의 관계에서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고 느낀다면 당신 삶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다른 영역에서 마음껏 선택하세요. 그러면 좀 더 인내심이 생길 것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관심을 높이세요. 마사지, 편안한 잠, 요가, 운동, 비타민, 좋은 식사로 당신을 챙기세요. 

당신이 느끼는 분노와 좌절감을 잘 탐색하셔서 그것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행동으로 바꾸세요. 즉 입양을 고려하고 있는 여성들이나 아기를 포기해야 했던 여성들을 위한 변화의 힘으로요. 그러면 당신은 희생자가 아닌 용사가 됩니다. 능력 있고, 배려하고, 매력적인 여성이 되세요. 당신 딸이 존경할만한 바로 그런 사람으로 말입니다."



 입양으로 헤어진 가족이 만나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엄마와 딸이 헤어졌던 긴 시간이 회복되려면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고 이해가 필요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회고록은 오리진스-USA(미국미혼모권익옹호단체)에서 재회를 한 사람들 또는 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재회를 경험중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더 나아가 미혼모라는 이유로 아이를 포기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엄마가 직접 양육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 http://originsusa.memberlodge.org/Why_Reunions_Go_Wrong
By Jane Elizabeth Edwards (2007)

※ 이미지 출처 - blog.wolframalpha.com, grief.com









Reactions 딸들과 엄마들의 반응

엄마들은 딸들과 재회했을 때 감정에 복받쳤다. 자신의 첫 아이였던 그 딸을 포기해야 했을 때처럼 정서적으로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감춰져 있던 슬픔은 폭발했다. 그들은 점점 애원을 하며 용서를 구하고 자신들의 아이를 달래면서 딸들이 다시는 자신을 떠나를 않기를 희망했다. 나 역시 그랬지만 그 엄마들의 감정은 로맨틱해지며 감성적이 되었다. 

딸들은 엄마의 이런 반응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딘은 아래와 같이 썼다. 

"엄마가 나를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했지만 두 팔 벌려 환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경우도 내 딸은 "엄마는 엄마의 삶을 잘 살고" 딸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기쁨이 아닌 불안과 죄책감

엄마들은 딸들이 상상한 대로 여신이나, 여왕중의 여왕, 최고경영자, 아름다운 영화배우, 매우 유능한 사람으로 그 어떤 사람이라도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보살필수 있는 환상의 엄마들이 아니다. 

홈즈는 자신의 엄마 헬렌을 잔인하게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원했다. 세련되지 못했는데 그것은 지적이지 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순진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아니었다. 머리도 옷도, (육감적인 취향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버트 바카라나 다이나 쇼를 듣는 몇 세기 전 사람 같았다.) 첫 만남을 위해 선택한 레스토랑이나 음식, 테이블 매너 모두 아니었다." 생일 날 보내온 카드는 헬렌의 표현에 의하면 '장미가 그려진 썩은 분홍빛, 여성 취향이 줄줄 흐르는 생리대 포장지 같은 그런 핑크색의 카드' 였다." 

리프톤, 딘, 그리고 필립스외 여러 엄마들은 아빠들에 대해 말하길 거부했는데 그것이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딸들은 놀라울 것도 없이 엄마들과 자신들의 비슷한 점을 부인했다. "나는 그 여자에게서 나 자신과 닮은 것을 본 순간 얼어붙었다." 라고 홈즈가 말했고 "나는 엄마와 내가 비슷하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었다." 라고 스트라우스가 말했다. 

천주교 집안으로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입양부모 아래 자랐던 케이티 헌만이 생모 엘렌에 대해 긍정적으로 썼다. 

    "왜곡된 상들이 균형이 잘 맞고 즐거운 상들로 바뀌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내면에 있던 초조함이 모두 사라져 정말 안심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달리 헌과 엘렌은 시작부터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했다. 


입양가족이 느끼는 배신감

나의 딸의 입양엄마는 내 딸이 나를 찾는 것을 그만두게 했다. "묵은 상처만 들춰낼 뿐이야." 딸과 내가 첫 번째 재회 후 계속해서 만나자, 그녀는 상처를 받았고 분노했다. 입양엄마의 바람과 달리, 나의 딸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주인" 이기 때문에 나와 계속 연락할 것이라고 고집했지만 나는 그 양엄마의 반대가 결국 우리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확신했다. 

친엄마가 딸을 찾아 엄마를 만나게 된 리프톤은 입양엄마에게 엄마와의 재회를 말하지 않았다. "입양엄마가 가졌을 환상을 깨는 것은 그녀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을 깨는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라우스는 비록 자신의 양부모님이 돌아가셨지만 그 분들에게 성실했다. "나는 보석상자에 보관했던 엄마의 결혼반지를 빼서 결혼반지가 끼어져 있던 손가락 옆 손가락에 꼈다. 이건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나의 양엄마와 결혼 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내 인생에서 엄마의 자리를 대신 할 수는 없다."

필립스는 입양가족에게 친생 엄마와의 재회에 대해서 몇 년 동안 말하지 못했었다. 그녀는 엄마를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지 못했다.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 분도 결혼식에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나의 양부모님께 너무 힘든 일이 될 것 같았다."

헌은 "배신자가 되는 것처럼 느꼈다. 특히 입양부모에게 말이다." ,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나의 양부모님과 친생엄마가 살고 있는 영국의 첼름스퍼드까지 여러 번 여행을 했지만 양부모님에게는 그 사실을 말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친생엄마와 은밀한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Two Families 두 개의 가족

비밀 입양이 되어 길러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딸도 자신의 원부모의 흔적을 지워버린 입양법이 옳다고 믿고 자랐다. 입양법이 자연법에 승리를 거둔 것이다. 헌은 이렇게 기록했다. 

    "카톨릭 자선단체가 주선하는 비밀입양 제도는 아이의 원(元)부모를 다른 부모로 바꾸고 원부모의 모든 기록은 완전히 제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이 관행은 효과가 있었다. 나의 출생 기록은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생모와 재회하기 전까지) 나에게 또 다른 한 쌍의 부모가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두 쌍의 부모, 즉 엄마도 둘이고 아빠도 둘인 상황을 개념화할 방법이 없었다. 둘 중 하나여야지 하지 않은가."

홈스는 자신의 출판기념회에 엄마 헬렌이 나타났을 때 자신이 두 명의 엄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맞닥뜨렸다. 

    " '정말 경우가 없으시네요.' 라고 나는 말했다. 서점은 무슨 기괴한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멀리 또 다른 그림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양엄마와 양엄마의 친구가 내게로 다가오는 거였다. 생모와 양엄마, 두 명의 엄마가 만나서 충돌하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완전히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 누구도 한 공간에 동시에 두 명의 엄마를 두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스트라우스는 두 명의 엄마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처음 원가족을 만났을 때 나의 초기감정은 '부정' 이었다. 실제 존재하는 그 엄연한 관계를 부정하는 것 말이다. 나는 내 삶에 나의 생모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무시하면서 삼십 년을 그냥 보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는 예전에 경험했던 그 모든 종류의 두려움과 동일한 그런 두려움을 느꼈다. 엄마가 두 명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님이 둘이라고 신성모독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의 신념 체계를 바꾸는 것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마치 비난하는 것 같았다."

비록 내 딸이 원가족과 재회하는 만남에서 나의 오빠와 언니 그리고 친척들을 만났다 하더라도 내 딸에게 우리는 덜 중요한 가족이 되어있는 것은 분명했다. 올 해 나는 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초대는 받지 못했다. 


Relationship with The Adoptive Family  양부모 가족과의 관계

생모와의 재회는 오히려 딸들과 양부모와의 관계를 개선시켰다. 필립은 "원가족을 만나고 나니 이제야 말로 내가 양부모님 가족의 진정한 일원이 된 것 같아요.", "요즘 우리의 관계는 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라고 말했다. 딘은 양아버지에게 "날 낳은 엄마 루스를 만나고 나니, 내겐 없었던 생모의 존재보다 내 곁에 있는 양부모님께 더 감사한 마음이에요."


Strangers in Their Own Family  원가족 안에서의 이방인

입양인들은 입양 가족을 그들의 가장 중요한 가족으로 인식하는 한편, 원가족 안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아파한다. 헌은 엘렌에게 이렇게 썼다. 

    "약 4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자신에게 하던 이야기를 믿었어요. '나는 입양 되었다. 큰 사건이다.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방과 후 특별 교실에 간다거나 그런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렇게 나 자신에게 계속 말했던 것은 사실 대피소로 나 자신을 피신시켰던 거에요. 내가 인정할 수 없었던 사실, 즉 엄마가 나를 낳고는 포기했다는 그 사실로부터 상처받지 않도록 나를 피신시킨 것이었죠. 심지어 지금도 나는 ‘엄마가 나를 포기했다' 는 문장을 쓰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니 여러 감정들이 올라왔어요. 그 중 맨 처음 떠오른 감정은 슬픔이었죠. 내가 이제 가족이라 여겨야 할 사람들 속에서 난 사실 낯선 사람이란 슬픔이요."

첫 가족상봉에서 딸은 혈육을 나눈 가족과 친척보다 주변의 관광명소들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 애가 이런 아웃사이더로서의 불편한 감정을 감추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리프톤의 엄마는 자신이 십대 때 미혼모로 출산한 아이에 대하여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 두려워 딸을 공개적으로 만나기를 거절했다. 

    "엄마가 공개적으로 나를 자신의 친딸이라 인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몇 년 전 엄마와 두 번 만남을 가졌을 때만큼 충격적인 건 아니에요."

    "결국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과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생에서 우리는 법으로도 피로도 서로 연결될 수 없었지만, 가슴으로 통하는 무엇, 서로에 대한 걱정과 연민, 혈육에 대한 막연한 끌림, 태고적 어느 우주 공간에서 만들어진 영혼의 일치감 같은 것으로 연결되었다' 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맞다. 난 수없이 많은 방법들로 나를 위로했지만 그뿐이었다. 위로 차원에서 주는 상을 받는 그런 기분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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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으로 이어집니다. 





원문 : http://originsusa.memberlodge.org/Why_Reunions_Go_Wrong
By Jane Elizabeth Edwards (2007)

※ 이미지출처 - allmandlaw.com, kimaworld.net, movabletypo.net, motivation-for-dreamers.com, http://loveisaspiritualforce.blogspot.com/2012/02/to-stranger.html




친엄마와 재회를 한 입양인들은 정서적으로 혼란을 겪는다고 합니다. 입양인들의 입장에서는 친엄마가 궁금하고 알고 싶은 호기심과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님과의 사이에서 많은 생각들이 혼란으로 나타나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엄마들은 기쁜 마음으로 재회를 시작했다가 만남을 지속하면서 변하는 입양인들의 태도에 당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알고 대처해야 하는지 서로의 입장에서 바라 본 이야기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친엄마와 재회를 한 입양인들의 반응을 회고록으로 작성한 제인 엘리자베스 에듀워드의 글을 통해 여러분들께 소개하겠습니다.

내용이 꽤 긴 관계로 3편으로 나눠 소개하겠습니다. 


1997년 11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31년 전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 두고 떠났던 나의 딸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암흑과 같은 그날 이후 꿈에 그리고 바라던 전화였다. 그 애는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우리는 매일 이메일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의 남편에게 결혼하기 전 입양 보낸 딸에 대해 대충 얘기하고 그 외 가족 그 누구에게도 그 딸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난 그 애에 관한 것을 계속 비밀로 하려고 했다. 단지 만나서 그 애가 묻는 것에 대답하고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으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애와의 연락이 거듭될수록 그리고 그 애를 더 알아갈수록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애가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되길 바랬지 숨겨진 비밀로 남겨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1월에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 전에 현재 나의 아이들에게 간략하게 나의 숨겨진 딸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나는 우리의 만남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애가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난 절망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입양 보내진 여성들의 회고록을 탐독하기 시작하며 베티 진 리프톤(Betty Jean Lifton), 에이미 딘(Amy Dean), 진 스트라우스(Jean Strauss), 에이 엠 홈스(A. M. Homes), 자라 피립스(Zara Phillips), 사라 사피안(Sarah Saffian), 그리고 케이티 헌(Katie Hern)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Fantasy Mother  엄마에 대한 환상

입양인들의 배경과 삶의 경험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감정은 서로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엄마를 만나기 전에 딸들은 ‘고아 소녀 애니’(미국드라마)가 말했던 것처럼 ‘엄마가 실수한 것은 단지 날 포기한 것’뿐이지 다른 모든 것은 완벽하고 사랑스러운 생모의 모습을 상상한다. 

에이미 딘의 엄마 루스 (Ruth)는 18세에 성폭력으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되어 딘을 낳았다. 딘이 어렸을 때 양엄마가 알코올중독 이었기 때문에 딘은 위탁가정에 맡겨지게 되었다. 양아빠가 재혼을 한 뒤, 다시 양아빠 집에서 새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결코 양아빠의 아내를 새엄마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 딘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 대한 환상을 아래와 같이 적었다.

   “저는 이런 엄마를 가졌을 거라 상상했었어요. ... 다친 내 무릎과 팔꿈치의 먼지를 털어주고 내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웃는 얼굴을 가진 친절한 엄마...

   그녀의 체취와 뜰의 맑은 향기가 묻어 있는 부드럽고 깨끗한 옷들을 나를 위해 매일 준비하는 부지런한 엄마...

   나와 함께 많은 것을 하고 이야기 하며 내 인생에 관심을 보여주는 그런 엄마… 갓 구운 쿠키처럼 향기롭게 집을 꾸미고 배고프지 않게 아기를 열심히 먹이는 엄마…

   팔로 나를 안아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나의 머리를 풍만한 가슴에 데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매일밤 나를 안고 재우며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고 매일 밤 나를 재워주는 그런 천사 같은 엄마를 항상 꿈꿔왔어요”

런던의 교외지역에서 성장한 자라 필립스는 약물 남용과 알코올 중독으로 아주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저는 나를 낳아준 엄마에 대해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길가에서 엄마를 계속 찾아 보기도 했었어요. 몽상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다 보니 한번도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연결된 것을 느껴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항상 어느 날 저를 낳아준 엄마가 내 문 앞에 나타나 사과하면서 저에게 그건 아주 끔찍한 실수였다고 말해주기를 은근히 기다려 왔어요.”


Searching  친엄마찾기

베티 진 리프톤과 에이미 딘 그리고 진 스트라우스와 자라 필립스 이렇게 네 딸들은 딸들이 먼저 엄마를 찾았다. 그리고 사라 사피안과 에이엠 홈스는 엄마들이 먼저 딸을 찾기 시작했고 케이티 헌과 헌의 생모는 서로 노력해서 만나게 되었다. 

누가 먼저 찾기 시작했느냐에 상관없이 그 딸들은 모두 같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시골에 사는 따뜻한 양부모에게 입양된 진 스트라우스는 자신이 엄마를 찾고자 했던 것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왜 내가 엄마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할까? 나는 왜 나의 어린 시절과 또 부모님도 편안했지만 왜 이렇게 계속 친엄마를 찾고 싶어하지? 그러나 사실 난 부모님을 찾고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답을 찾고 있던 것이다. 마음속 빈 공간에는 물음표로 가득했다. 나의 호기심은 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바뀌었다. 나의 출생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답을 찾아야 했다.”

엄마가 그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뉴욕에서 자라나 작가가 된 에이엠 홈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어디서 살았는지,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는지. 지금은 뭘 하며 사는지, 가족병력이나 내가 어떤 상황에서 입양이 보내지게 되었는지 그런 것들을 알기 원해요”



Universal Regret  모두가 하는 후회

나와 마찬가지로, 입양으로 딸들을 잃어버린 모든 엄마들은 후회를 했다.

베티 진 리프톤의 엄마 래(Rae)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네가 두 살 이었을 때 너는 유양돌기 수술을 받아야만 했단다. 의사들은 네가 양부모가 있는 온전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는다면 죽게 될 거라고 했었지. 그 사람들은 나에게 진심으로 딸을 사랑한다면 입양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단다. 나는 네가 죽게 될까 봐 두려웠단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 입양 보내지 않았을 거야.

에이미 딘의 엄마 루스(Ruth)는 이렇게 말한다. 

   “에이미, 내가 성폭력을 당했지만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너는 나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란다. 나는 너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포기해야만 했단다.”

진 스트러우스의 엄마 레노어(Lenore)의 경우를 보면 

   딸은 나에게 “아시겠지만 엄마가 나를 포기한 건 옳은 일을 한 거에요”라고 말했다. 
   “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널 절대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너를 데리고 달아나고 싶었지. 지금의 내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난 네 모습을 그 아이들 안에서 찾았단다.”
 

자라 필립스의 엄마 팻(Pat)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너를 직접 키우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란다. 그러나 그 때 나는 17세 밖에 안됐었기 때문에 매우 미성숙한 상태였단다.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널 키울 수가 없었단다. 지금의 내 아이들을 아주 사랑하지만 내 인생에 뭔가 잃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 지금의 아이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잃어버린 아이의 빈 자리가 채워지는 건 아니더구나.” 

사라 사피안의 엄마 한나(Hannah)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가 너를 키울 수 없고 안을 수 없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 이 모든 것을 놓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가슴은 찢어졌단다. 1969년 당시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건 내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단다... 그 당시 나에게는 안 좋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지만 그러나 너를 가진 것이 절대로 안 좋은 일중에 하나는 아니었단다.”

케이티 헌의 엄마 (Ellen)엘렌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태어난 건 나에게 큰 기쁨이었단다. 분명히 멋진 엄마 아빠가 있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네가 자라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었기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어. 부족한 것 없이 살게 될 거라고. 그것 때문에 나는 간신히 견딜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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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으로 이어집니다. 






원문 : http://originsusa.memberlodge.org/Why_Reunions_Go_Wrong
By Jane Elizabeth Edward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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