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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시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2.29 미혼 엄마들의 진실된 이야기 3편
  2. 2011.12.07 미혼엄마들의 진실된 이야기 2편

  


Carlynne, 미혼엄마의 입양 이야기





임신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끝마칠 무렵이었다아이의 아빠는 임신에 대한 사살을 몰랐으며 이미 도시를 떠났고 나는 그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다또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돈, 살수 있는 집, 그리고 직업에 대한 어떤 지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결국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복지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임신을 했을 때는

19살이었고 20살에 나의 딸이 태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기에 충분한 나이이니 딸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떠냐고 쉽게 말했다.

나이가 어린것에 대한 두려움과 혼외로 임신을 했다는 불명예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다른 부부에게 입양을 보내 내가 해줄 수 없는 모든 것을 채워줄 것이라는것과 모든 아이들은 두 명의 부모가 있는 가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만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딸 아이의 양부모는 그녀가 매우 어렸을 무렵이혼했다. 그녀는 양모 혼자로부터 키워졌는데도 아무도 그녀에게 다른 두 커플이 있는 가정에게 아이를포기하라고 제안하지 않았다


나는 임신한 동안 나이가  많은 한 낯선 여성과 함께 지냈지만 기본적으로 혼자였다. 나는 그녀를도

와 집안일을 했고 그녀에게 식사를 가져다 주었으며 휠체어를 탄 그녀와 함께했다. 내가 분만실에 들어갔을때 그녀는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그곳에서 나를 떠났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나는 홀로 고립되었다.

나는 의사를 아이를 낳을 때 처음 보았다. 분만을할 때 찢겨졌던 부분을  꿰매야 했는데 의사는 마취 없이 진행했다. 내가 그에게 소리를 지를 때, 그가 단지 내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지른 것 밖에 없었다. 나의딸을 담요에 감싸 빠르게 데려갔고 내가 나의 아이를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뿐이었다. 사실상, 그들은 내게 딸이라고 알려주지도 않았다. 다음날, 내가 간호사로부터 우연히 알아낸 것이다. 내가 회복을 할 동안 나는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신생아실 건너편 방에 있었다.

매번 문을 닫아 간호사를 차단 시킬 때마다 간호사는 다시 와서 문을 열고 갔다. 문에는 빨간 판지에 검은 글씨로 “BFA”라고 쓰여진 사인이 붙어있었다. 이것과 똑 같은 사인이 나의 침대 머리맡에도 붙여져 있었다


3
일 뒤, 나를 CSS사무실로 데려가 입양동의서에사인을 하라고 했다. 그 방에는 나에게 한 박스의 티슈와 함께 종이를 건넨 여자를 제외하고는 나뿐이었다. 나는 흐느껴 울면서 사인을 했다. 나는 그밖에 내가 할 수 있는일을 알지 못했다


나는 입양으로 아이를 잃는 것을 죽음에 비유하곤 
했다. 사실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것은 좀 더 납치에 가깝다. 22년의 슬픔의 세월이 지나서야 나는마침내 나의 딸을 만날 수 있었다.


내용출처- Origins U.S.A. http://originsusa.memberlodge.org/

이미지 출처- catholicsocialservicesrapidcity.com,reusedomains.com,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mary0310&categoryNo=1,mysticmadness.com

written by Seul



익명, 미혼엄마의 솔직한 입양이야기





입양을 보냈을 당시 나이 16

입양을 보냈을  살았던 : Canada

입양을 보낸  : 1983





임신을 한 동안 저는 미혼모들을 위한 미혼모시설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나의 딸을 포기하도록 강요 받았습니다. 미혼모시설에 수녀님들은 나에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편지를 쓰도록 했습니다






수녀님들은 제가 입양을 선택한다면  딸이 18살이 될 때 제가 쓴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저의 편지는 전해지지 않았으며 이것 또한 강요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의사와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 또한 강요를 했습니다. 나의 엄마는 독실한 카톨릭신자로서 혼외로 임신을 한 저를 매우 수치스러워 했고내가 입양 동의서에 사인을 했을 때 더 이상 우리 가족이 수치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안심했습니다.


저는 제가 결정했어야만 하는 결정에 대해서 이야기할 단 한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선택이 의미하는 정보에 입각한 동의와 최소한의 두 가지 선택에 대해 어떤 선택권도 갖지 못했습니다. 위와같은 정보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어떤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딸을 출산 한 후에 2년 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굉장히 우울하여 딸의 상실로부터 마음이 아팠고 나의 팔 들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주의를  무엇인가 잃어버리거나 없는  것이 있는지 둘러 보았습니다. 담당 의사는 내가 이겨낼 수 있고 훗날에 다른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다른 아이를 가지지 못했으며 이것은 내가 입양으로 경험한 입양의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딸은 내가 그녀에게 아마도 주지 못했을 것들을 제공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딸의 입양부모가 알코올중독인 것을 들었고 거의 집에 오지 않아 할머니가 그녀를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제가아이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을 나의 딸아이에게 제공하는 양부모에게 멋진 선물이라고 들었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누군가에게 아이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 되었는는지, 대체 언제부터 아이가 선물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트라우마는 나의 인생에 매우 큰 공허함을 남겼다.


저는 계속해서 우울증과 싸우고 있고 친구, 나의 부모, 나의 의사 등을 믿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상담사를 만나고 있고 지난 15년 동안 이것을 매듭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재결합이 이루어 지기 전에 나는 그녀가 살아 있는지 그녀의 부모도 살아있는지 실제로 그녀가 입양이 되었는지 등등 이 궁금하곤 했습니다. 딸이 나에게 연락하여 그녀가 괜찮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매우 기뻤다. 현재 지금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안채 만약 이 일들을 모두 다시 겪어야 한다면 나는 딸과 내가 겪어야 할 고통을 인내하여 나의 딸을 꼭 지켜낼 것입니다. 

 


이미지출처-pambg.blogspot.com, talk2glasgow.com, studentsforliberty.org, gabrielweinberg.com,allthingschristmas.com,eggjk.tistory.com

내용출처- http://originsusa.memberlodge.org/

오리진스U.S.A에 방문하시면 더 많은 엄마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written by Se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