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 카렌 (Karen Lynn) 어머니가 그녀를 온타리오 클락슨(Clarkson, Ontario) 미혼모 시설로 보냈을 , 카렌은 19살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도록 성을 사용하는 대신 카렌A라고 불렸으며, 입양에 동의해야만 시설에 머무를 있었다.

일년 , 빅토리아(Victoria) 있는 병원에서 당시 스무 살이었던 샤론 피더슨(Sharon Pedersen) 출산 마취되어 침대에 묶여졌고, 이후 창문을 통해 신생아실의 자신이 낳지 않은 명의 아기를 았던 것이 전부였다고 말한다.

 

그녀가 입양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려 소리를 지르고 가구를 던지자, 사회복지사들은 손에 강제로 펜을 쥐게 했고 경찰을 부른다고 협박했다. 결국 그녀는 지역 아동지원단체의 입양동의서에 서명했다.

 

캐나다 전역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밝혀지면서, 이때까지 캐나다의 입양 관행에 대한 연방 정부의 조사를 요청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자녀와 다시 만날 있었지만, 그들은 강요에 의해 이루어졌던 강제적 입양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모든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도록 강요되거나 강제적으로 입양을 보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에 드러난 미혼모들의 사례가 전부인 것도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이루어진 입양에 관한 최근 호주정부의 조사에 제출된 증언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지난 호주 상원 위원회는 정부가아이를 강제적으로 빼앗긴 많은 부모들에게 사과를 하도록 촉구했다.

 

분야 관련 전담 변호사에 의하면, 캐나다에선 조사에 대한 단순한 요구를 넘어 퀘벡(Quebec) 비롯한 서부지역 ()정부를 납치, 사기와 강압으로 고소하는 집단소송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연합 교회(United Church) 대변인인 부르스 그레거슨(Bruce Gregersen) 이야기는 슬프고 힘든 분명하며, 우리는 이제야 이야기들을 듣기 시작했다 말했다. 연합 교회가 다른 단체와 함께 운영한 위니펙(Winnipeg) 있던여성을 위한 교회 ’(Winnipeg’s Church Home for Girls)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양육하고자 한다면 형사 입건될 있다고 통보받았다. 그레거슨은이것이 우리가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덧붙였다.

 

<내셔널 포스트(National Post)> 일곱 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그녀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것이 처음이었으며, 미혼모가 아이를 입양시키도록 했던 단순한 사회적인 압박 이상의 것을 드러내고자 했다.

 

십대의 미혼모였던 밸러리 앤드루즈(Valerie Andrews) 그녀 자신도 모르게 모유 수유를 멈추는 약을 먹었다고 했다. 한나 앤더슨(Hanne Andersen) 역시 십대의 미혼모로 자신의 아이를 양육하려고 했지만, 이미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 병원 기록에는입양을 위한 아기라고 쓰여져 있었다고 말했다. 온타리오 서드베리(Sudbury) 사회복지사들은 에스더 타디프(Esther Tardif)에게 그녀가 공공부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사랑한다면 입양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에서 인터뷰한 대부분의 미혼모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진 강압이 체계적이었다고 말했다. 교회가 운영하는 조산시설에서 숙소를 배정받기 위해서는 입양이 필수 조건이었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헤어짐의 이유를 설명하는 편지를 써야만 했다. 사회복지사들은 공공부조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으며, 미혼모들이 아이를 위태롭게 있기 때문에 기소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들 역시 미혼모들을걸레라고 부르며 진통제를 주지 않았고,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십대들을 침대에 묶고 천으로 그들의 시야를 가려 출산과정을 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입양 관행 하의 어머니들에 대한 나쁜 대우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캐나다의 생모 협회(Canadian Council of Natural Mothers) 회장인 (Lynn)캐나다의 기득권층에게 이번 이슈는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항상너는 아기를 포기했어라는 말을 들어왔고, 때마다 내가 말한 것은 기껏해야 그것이 비극적인 선택이었다는 것뿐이었다.”

 

앤드루즈는 캐나다 통계청의 1945년부터 1973년까지의 사생아에 대한 정보와 당시 대략적인 미혼모들의 입양 선택 비율을 연구했고, 결과 천문학적인 추정치를 내놓았다. 무려 35 명의 캐나다 미혼모들이 입양을 선택하도록 설득이나 강요, 강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리 체임버스(Lori Chambers) 어떤 미혼 여성들이 아이가 안정한 가정에서 자라고 사생아의 오명을 피할 거라는 것을 알기에 감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1921년부터 1969년까지 온타리오의 미혼모들에 대한 <오해(Misconceptions)>라는 책을 쓰기 위해, 보관되어있던 수천 가지 아동지원사례를 조사한 있다. 배척 당한 여성들 모두가 조산시설에서 고통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는 제공받을 없는 주거지와 음식, 우정에 감사하는 사례도 있었을 것이다.

체임버스는 “‘미혼 여성들이 아이들을 포기했는가 아니라, ‘어떻게 어떤 여성들은 포기하지 않을 힘을 가졌나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대부분의 미혼모는 아이를 포기하고 아이를 입양을 보낸다 말했다.

 

앤드루즈는 낙태가 불법이고 피임이 쉽지 않았으며 미혼모를 문란하고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지능이 너무 낮다고 보았던 시기에, 교회가 운영한 조산시설과 병원, 아동지원단체들에서 십대 미혼모들이 받은 대우를 지난 4 동안 기록해왔다.

 

1960년대에 토론토(Toronto)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미혼모 문제를 다루던 사회복지사 조이스 마셀링크(Joyce Masselink) 앤드루즈의 추정치가현실적이지 않은 같다, 그녀가 자주 방문하던 밴쿠버(Vancouver) 교회가 운영하던 조산시설에 있던 소녀들은아주 좋은 대우를 받았다 말했다.

 

온타리오 하원 의원 마릴린 철리(Marilyn Churley) 1968 임신했을 당시 도와줄 사람이 없을 , 온타리오의 사회 복지사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는 입양 이외의 대안에 대해서는 전혀 말해주지 않았고, 철리는 진통제 없이끔찍한” 24시간의 진통을 참아야만 했다.

 

마셀링크는내가 알고 있는 사회복지사 입양을 강요한 사람은 없었고 나도 절대 그러지 않았다 했지만 몇몇은 당시의 사회적 가치관을 철저하게 따르도록 유도했다고 덧붙였다. “그런 관행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말했다.

 

1961425일자 신문의 인생 상담란에 랜더스(Ann Landers) 칼럼은 당대의 미혼모에 대한 시선을 가장 보여준다. 미혼모의 자식 사랑을 언급하면서 그녀는그런사랑 의심스럽다. 그것은 병적이고 뒤바뀐 사랑이며, 자기 연민과 자멸, 순교의 불건전한 조합이다라고 썼다.

 

앤드루즈는 인터뷰를 대부분의 어머니들이수치심을 느낄까봐그들의 비밀을 수십 동안 지켜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난 호주의 보도자료가 나온 이후로, 캐나다인 어머니들은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그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원치 않았던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릴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앤드루즈는 토론토에서 이번 가을에 캐나다의 입양 역사를 밝힐 이틀 간의 회의를 준비했고 수백 명의 어머니들과 입양된 사람들이 참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호주 위원회는 정부가 그때의 사회적 가치관을 언급하지 않고, 어머니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도록 요구했다. 보도에 따르면 어떤 어머니들은체계적인 무력화로 임신 기간 동안 피해를 받았다 말했다.

 

온타리오에 사는 케이티(Katie) 자신의 딸이 자신이 강간으로 임신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성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며, “나는 아직도 수치심을 느낀다. 병원 기록을 통해 사람들이 나한테 짓을 후에야 끔찍한 부담에서 벗어나 편히 숨을 있었다 말했다.

 

케이티는 그녀가 살던 연합 교회 시설에서 멀지 않은 위니펙 병원에서 분만유도약을 받았고, 자신의 아이를 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발의 17 소녀는화학적 구속복(like a chemical straight-jacket-정신 이상자와 같이 폭력적인 사람의 행동을 제압하기 위해 입히는 )" 인해 정신을 잃었고, 나중에 깨어났을 갓난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검은 머리의 아이를 보았다고 했다.

 

케이티는 입양동의서에 절대로 서명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녀가 법정에서 끄덕인 것이 딸을 국가의 보호를 받는 피보호자로 만든 같다고 기억한다.

 

체임버스는 온타리오의 아동지원단체들이1965 정부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기 이전에는 대부분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었고, 아이를 입양한 부모로부터도 빈번한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단체들은 이해관계로 인한 충돌이 있었고, 가끔은 아이의 친아버지와도 거래를 했다. 거래 조건은 그가 입양에 동의하고 단체에 소액을 지불하면, 단체가 비용이 많이 드는 법적 양육비 분쟁에서 여자를 변호하지 않는 것이었다.

 

입양으로 헤어진 사람들을 지원하는 오리진스 캐나다(Origins Canada) 대표인 앤드루즈는 캐나다 연방 정부가 호주의 선례를 따르고 자국에서의 조사에 착수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녀는 100명의 어머니와 입양된 사람들이 기관에서 실시하는 추후의 조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오리진스 캐나다에 등록했지만 법무부 장관인 니콜슨(Rob Nicolson) 측에서 앤드루즈에게 이것은 주가 해결할 문제라고 했다고 말했다. 장관의 대변인은 그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앤드루즈에 따르면 2011 7월에 그녀의 온타리오 주의회의원인 레자 모리디(Reza Moridi) 아동청소년 복지부 장관에게 편지에는 아직까지 답장이 없다.

 

앤더슨은아무도 역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호주 여성들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앤더슨은 태어났을 불법적으로 헤어진사람들을 위한 변호 그룹인 어머니와 아이를 위한 정의(Justice for Mother and Child) 현재 이끌고 있다.

 

앤더슨은 수요가 높은 건강한 백인 아기를 낳은 어머니들이타겟이 것에 대한 캐나다기마경찰(RCMP) 범죄 조사를 촉발시키기 위해서 이번 달에 경찰에 신고서를 접수할 계획이다. 1982 15살의 나이로 임신한 앤더슨은 자기 아이를 안아 보는 것이 번밖에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앞으로 주나 개월 안에 브리티시컬럼비아 정부를 상대로 제기할 집단소송에서 대표 원고의 역할을 것이다.

 

앤더슨은 자신이 실제로 아이를 데리고 있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입양에 동의했다는 것이 무효라고 주장한다. “출산 직후 발은 아직 고정대에 있었고 아기를 없도록 몸에는 천이 덮여 있었다. 그들이 아이를 담요에 쌌다나는그만하세요! 우리 아기를 데리고 어디 가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다가 결국에당장 아기를 데리고 와요!’ 라고 소리쳐야 했다 말한다.

 

집단소송 진술서의 초안은 이번 집단소송이 “BFA(Baby for Adoption – 입양을 위한 아기) 의정서 인해 영향을 받은 여성들을 포함할 것이고 부모로써 아이를 키울 기회 박탈 동의가 없는 의학적 치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일반·특별손해를 다룰 것이라고 명시한다.

 

앤더슨의 유명한 변호사인 토니 머챈트(Tony Merchant)아이가 혼외로 태어났을 경우,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지낼 없다는 정책이 있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말했다. 서스캐처원(Saskatchewan) 있는 머챈트의 법률 사무소는 2006년에 인디언들을 위한 기숙 학교와 관련한 집단 소송에서 20$(캐나다 달러) 합의를 이끌어낸 있다.

 

호주에서 조사자들은 BFA정책이 당시 만연했던완전한 단절 이론 적용한 것이라고 들었다. , 출산 친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당시의 최선책이었다는 것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아동가족발달부는 대변인을 통해 “1960-70년대에 여성들이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도록 강요한 정부의 공동 정책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머챈트는 정부가 교회 운영 단체들을 지원했기 때문에, 이번 집단소송을 통해 단체들의 잘못된 행동의 책임을 정부에 지우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세군(Salvation Army) 대변인 머레이(John Murray), 앤더슨은 조산시설에서 굶고 폭언을 들었으며, 어떤 공조제도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메이우드(Maywood) 같이 정부 재정 지원을 받은 조산시설들이 도움이 필요한 십대 임산부들을 제때에 도왔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40-50 전에 단체들이 그들의 시설을 어떻게 운영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답할 없다고립적인 상황들이 없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그러나 분명히 역사적으로 지역 주민들은 구세군을 환영하고 소중하게 여겼다고 생각한다 덧붙였다.

 

 

 

린이 머물렀던 조산시설을 소유한 캐나다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대변인은지금은 40 전에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했다. 캐나다천주교중앙협의회(Canadian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 상황에 대해서 논평하는 것은 특정한 교구의 몫이라고 했다. 캐나다의학협회(Canadian Medical Association) 캐나다소아과협회(Canadian Pediatric Society) 대답하지 않았다. 온타리오 어린이구원단체 협회가 인터뷰 요청을 토론토 어린이구원단체에게 넘겼지만, 단체 역시도 개별적인 인터뷰 요청에 답을 하지 않았다.

 

 

한편 그레거슨은 이제 연합교회가 조산시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록된 자료를 살펴보겠지만 연구자들이 그들의 노력의 초점을 어디에 두면 좋을지 있도록 어머니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피더슨은 문제에 대해서 캐나다는 너무 뒤쳐져있다면서호주의 보도가 나왔을 때부터 나는 기대감에 가득 있었다. 이제는 입양들이 강제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가 됐다 했다.

 

 

 

Kathryn Blaze Carlson | 12/03/09 National Post

 

 

 

If you have further information for the reporter on this story, please email kcarlson@nationalpost.com.

 

 

원문 : http://news.nationalpost.com/2012/03/09/curtain-lifts-on-decades-of-forced-adoptions-for-unwed-mothers-in-canada/

 

 

진실을 위한 기도

엄마들 이야기 (동영상) 2012.04.29 21:24 Posted by 금순이네



이 동영상은 입양아로 자란 미국인 셀리스츠 빌하르츠씨가 제작한 "비디오 시"입이다. 
입양아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입양에 대한 화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입양은 원해지지 않았던 아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원해지지 않았던 엄마들에 대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다면, 아마 당신은 입양이 자신의 아이를 보내고 싶고 보내길 선택한 엄마들에게서 시작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입양기관이 당신이 믿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트래커스 인터내셔널(Trackers International)은 1000명의 생모들을 조사한 결과 97.7%가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강요로 인하여 아이를 포기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기 원했던 여성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싱글이고, 어리고, 병약하다는 가족들이나 입양기관이 생각하는 취약한 요소들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을 강요와 협박 그리고 거짓말들에 의해서 나에게서 빼앗았다.

사회복지사와 변호사가 우리의 사인을 요구했을 때 우리 중 몇몇은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들 중 다른 누군가는 결코 사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님이 아이들 입양에 사인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서류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그들의 아이들을 만날게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사인을 하지 않으면 수천불에 달하는 병원비를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우리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우리에게서 데리고 가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나서 우리에게 사인을 하라고 했다. 입양은 엄마의 동의와 관계없이 이미 성사된 거래였다. 

“입양기관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미혼모의 상태라면 아이나 자기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고 성공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을 지적할 의무가 있다… 미혼모와 그의 자식만으로도 가족이 된다는 개념은 지지할 수 없다. 여기에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가 없다.” - Joseph H. Reid, “원칙, 가치 그리고 입양 관행의 숨겨진 추측”, 1956 NAT'L CON. SOC. WORK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과 아이들에게 입양이 미치는 결과에 대한 진실을 결코 들려 주지 않았던 사기의 피해자들이다. 사실상 우리를 의도적으로 속였다. 우리로부터 빼앗은 아이로 입양기관은 돈을 벌었고, 불임부부에게 우리의 희생인 “최고의 선물”을 선사하면서 구원자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장미빛 향을 풍겼다. 우리는 복지에서 멀어지게 하고 브로커는 돈을 벌게 했다.  





* 내용 출처- http://www.exiledmothers.com/babies_taken_for_adoption/index.html
* 이미지 출처- darkwing.uoregon.edu, healthur.com, 6teen.wikia.com, womensviewsonnews.org, noethics.net






지난 번에는 미국의 공격적인 입양시장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이 추세는 미국만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과 이웃나라인 캐나다에서도 미국을 본 보기로 한 입양이 산업화 되어 간다는 우려와 경고가 담긴 글이 있어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캐나다에서는 일반적으로 입양을 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캐나다인 대부분은 입양산업이라는 생각을 불편하게 느낄 것이고 상상할 수도 없고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캐나다에서 입양은 산업이고 그리고 그 산업은 두 자리 숫자로 성장하고 있다. 입양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산업이다. 왜냐하면 어린 싱글맘을 지원하는 것과 아이들을 기르도록 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론적으로 이유인 것이다.  


캐나다에서 벌어지는 입양은 지난 몇 십 년간 점차적으로 미국의 형태를 닮아가고 있다. 


미라 루벤(Mirah Ruben)이 쓴 황새 시장(The Stork Market)[각주:1] : 수십 조 달러 규모의 통제되지 않는 미국 입양산업(The Stork Market: America’s Multi Billion Dollar Unregulated Adoption Industry)」 에서는 미국의 입양산업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이웃 미국은 입양 산업이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돈을 벌 기회가 있는 곳에 사업은 성장하기 마련이고 점차 미국의 입양산업과 닮아가고 있는 캐나다에서의 입양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캐나다에 입양 산업이 없다고 추정하는 것은 적어도 순진한 일이다. 사실을 파헤쳐보자……


현재 캐나다 입양 기관의 웹사이트는 미국의 입양기관을 모델로 하고 있다. 부드러운 색과 귀여운 아기들 그리고 선물로 아기를 주는 행복한 "생모" 의 임신한 배의 이미지들을 사용하고 또 다른 은밀한 마케팅 방법들 모두 전반적으로 그들의 목적달성을 위한 것들이다. 캐나다의 입양 웹사이트에서는 그들의 마케팅에 "출산모(Birthmother)" 에서처럼 미국에서 만들어낸 "출산(birth)" 이란 용어를 마케팅을 위해 사용하고 "출산모들에게 편지" 의 작성을 돕고, 입양을 하고자 하는 캐나다 사람들이 스스로 "출산모" 를 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이력사항을 웹사이트에 올려 놓는다. 그 때부터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은 임신한 여성들이 마치 자신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 출산모" 라고 부른다. 

입양희망자들은 영원한 가족이 필요한 연장아나 장애아들 보다는 "신생아" 를 찾기 위해 이러한 서비스를 더욱 이용하게 된다. 

주정부들은 입양기관들을 느슨하게 감독하는데, 단지 일 년에 한 번 정도 기관들이 이러저러한 규정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할 뿐이다. 그것도 거의 재정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런 입양산업에는 어리고 상처받기 쉬운 임신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견제와 균형은 없다. 

사실 캐나다의 입양법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차 퇴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출산 후 24시간 안에 입양동의를 할 수 있다" 고 짧은 입양숙려기간을 "생모" 들에게 긍정적으로 홍보되고 있다. 캐나다에서 입양 숙려기간은 마니바토주(Manitoba)는 48시간 서스캐처원주(Saskatchewan)는 72시간이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주들은 7일에서 10일이다.

최근에 뉴 브런즈윅(New Brunswick) 법이 바뀌어 출산 후 보장된 입양숙려기간을 미국처럼 단축하였다. 그러나 캐나다 법은 분명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숙려기간을 늘여서 엄마와 아기가 불필요하게 헤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출산 후 산모가 회복할 시간과 자신의 아이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영국의 엄마들은 출산 후 6주안에는 입양에 동의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출산 전후로 하여 입양동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더 많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있는 엄마일수록 입양동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출산 후 빨리 입양동의를 하도록 허락하면 입양시장에 더 많은 아이들이 나올 것이고, 엄마가 아기를 다시 되찾고자 하는 것은 입양기관의 재정적 손실이 된다. 

돈이 거래되는 변호사 및 입양기관의 서비스와 입양관련 산업과 기타 서비스들은 캐나다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산업의 한 분야이다. 

캐나다에서 입양비용은 다양하다. 입양이 주정부와 아동보호지원센터를 통해 이뤄진다면 아주 적은 비용이 들지만 개인적으로 하는 국내입양이라면 비용은 매우 편차가 심한데 $10,000-20,000까지 들 수도 있다. 


 캐나다의 누군가는 이 돈을 받는다. (Someone in Canada receives this money.) 

어느 나라에서든지 해외입양은 최대 십만불까지 든다.

모든 입양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한가지 필수사항은 가정조사이다. 입양희망자가 캐나다 어디에 살든 가정조사는 받아야 한다. 이것은 가족을 조사하는 것으로 승인을 받은 입양기관 관계자 통상 사회복지사가 세 번 이상 집을 방문한다.  
개인적을 입양을 할 경우에 가정조사는 $1,000 에서 $1,500가량이 든다. 

 캐나다의 누군가는 이 돈을 받는다. (Someone in Canada receives this money.) 

입양 전에 입양 희망자들은 법에 규정된 절차들을 밟아야 한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부모들에게 어떤 과정을 이수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온타리오주(Ontario)의 "자랑스런 코스(PRIDE course)" 가 있는데 이것을 듣는 데는 약 천불 가량이 된다. 

 캐나다의 누군가는 이 돈을 받는다. (Someone in Canada receives this money.) 

입양산업의 고객 (The Client in Adoption)

입양을 산업이라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고객이나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입양산업에서의 고객은 장래의 양부모이다. 대부분 입양 희망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닌, 아마도 건강상의 이유로 인한 불임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싱글이거나 게이이거나 혹은 임신 보다는 입양을 선호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구원하거나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입양을 하고자 할 것이다.



입양중개인 (The Broker in Adoption)

입양을 산업이라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입양을 주선하는 사람 또는 중개인이 있어야 한다. 중개인은 정부기관이나 사설 입양기관, 혹은 사회복지사나 변호사, 의사, 지역의 성직자 아니면 심지어는 대리모의 경우에서와 같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이를 구하려고 하는 개인일 수 있다. 보통 중개업자들은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찾아주는 "자선을 베푸는" 일로인한 수수료 또는 기부금을 통해 이득을 얻는다. 영유아들은 어느 곳에서라도 $10,000부터 수십만 불까지 금액으로 팔린다.


입양을 위한 상품 (The Product for Adoption)

입양을 산업이라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상품이 있어야 한다. 입양 산업에서 팔고 있는 "상품" 은 인간 아이와 "진짜 부모가 된다" 는 약속이다. "제 몸으로 낳은 것과 진배없다" 는 입양 이론은 수백 편의 연구에서 반박되어 왔지만 입양산업은 아직도 입양 희망자들에게 이 이론을 계속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고객들이나 소비자 중 일부는 친 엄마로부터 이러한 고객들이나 소비자 중 일부는 친 엄마로부터 "버려졌다" 고 여겨지는 아이를 입양한 "구원자" 란 사실을 즐긴다. 

수요가 가장 많은 아이는 건강한 아이이며 특히 백인아이가 인기가 좋다. 인종학살의 한 방식으로 아기들이 원가족들로부터 분리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호주 원주민과 캐나다의 토착민족의 경우가 그랬다. "원주민" 들을 다른 종족과 교배시켜 사라지게 하고 결국 백인과 구별이 안 가게끔 하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기흡입시대[각주:2] 동안 "미혼모" 에게서 아기를 데려가는 것도 또한 집단 학살과 같은 것이었다. 교회는 그들이 갖고 있는 이상적인 "합법적" 가족에 부합하지 않는 "가족" 의 형태는 모두 없애려고 했다. 


모든 입양 프로그램은 늘 입양이 아이를 위한 최고의 이익인 것처럼 홍보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이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 정체성, 유산 등의 상실로 고통 받으며 아마도 친엄마로부터 거부당하고 버려졌다는 느낌, 버려졌다는 느낌, 상실감 또는 애착장애로 고통 받을 수도 있다. 
"상품" 또는 공급되는 아이는 학대나 방치 또는 장애를 가졌거나 고아인 이유에 보육기관에 맡겨지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입양이다.

그러나 종종 어리고 순진하며 일시적으로 자원이 없는 엄마 또는 겁에 질려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그런 엄마가 "상품" 의 공급처가 되기도 한다. 그 엄마는 대체적으로 대학생이거나 대학생과 비슷한 상황 또는 높은 사회경제적 배경과 온전한 가정의 누군가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덜 유복한 가정환경의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연구들에서 유색인종의 미혼모들은 캐나다에서 입양을 권유하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은 유색인종들에게는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알려줘서 엄마 스스로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한다.

어리고 상처받기 쉬우며 임신을 한 어린 엄마나 호르몬의 변화와 임신으로 인한 다른 영향을 받고 있는 여성들은 이용당하기 쉽다. 어떤 엄마들은 인터넷에서 장학금을 알아보던 중 입양기관의 웹사이트에 현혹되어버린다. 일단 여성이 "노출" 되거나 "표적" 이 되면 중개인에게 절대 "입양 보내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어도 중개인을 완전히 떨쳐버리는데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

일단 중개인이 이 엄마를 표적으로 삼으면, 엄마와 아이를 떼어 놓으려는 영리하고 교활한 상술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아이를 출산하기도 전에 일어난다. 입양기관은 엄마의 본능적 사랑을 이용하여 "최상의 계획을 세우고 있음" 을 확신시킨다. 최상의 계획이란 학대당하고 방치 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친엄마가 양육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어떤 엄마도 아이를 안고 키울 때 느낄 느낌도, 아이를 입양 보낸 후 느낄 고통도 미리 상상해 볼 수가 없다. 그녀들은 자신의 아이를 안고 보살피는 환희를 미리 상상할 수 없고 아이가 가버린 후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도 알 수 없다. 아무도 그녀와 아이가 입을 심각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다른 공급처는 국제 입양인데 대부분 “미심쩍은” 곳으로부터 아기들이 확보되고 있다. 분명 이 세계에는 부모와 가족이 필요한 진짜 고아들이 있지만 오늘날 입양의 흐름을 보면 이러한 의심이 가는 공급처와 신뢰할 만한 공급처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비록 헤이그조약과 유엔은 해외입양을 규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폐단은 일어난다.

입양사기에 관한 1차 보고서에서 유엔 특별조사관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원래 입양은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정을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 날 대부분의 경우 아이가 필요한 부부에게 아이를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그 결과 모든 입양산업은 성장하게 되었고, 매해 수백만 달러의 소득을 올리며, 입양될 아이들을 수소문하고, 서류작업 명목으로 엄청난 수수료를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부과 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동안 상황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입양은 미국처럼 산업화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캐나다에서 말이다. 그리고 캐나다인들은 "언제 이렇게 됐지?" 하며 의아해 할 것이다.

그것에 대한 답은 "바로 지금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 라는 것이다. 

Copyright Valerie Andrews2009


한국에서도 입양은 꾸준히 진행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과연 캐나다의 일이기만 할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때문에 캐나다의 입양산업이 미국의 것을 모델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다는 위의 글은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 이미지 출처 - babychildrenkids.com, cia.gov, familypreservation.blogspot.com, lyrics-now.com, latestforextips.com, andrewsullivan.thedailybeast.com, allaboutbaby123.com






  1. 서양에서는 아기는 황새가 물어다 준다는 전설이 있다. [본문으로]
  2. 과거 서구에서 미혼모에 대한 차별로 미혼모의 아이들은 모두 입양을 보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러한 시기를 “아기 흡입시대(Baby Scoop Era)”라 부른다. 캐나다의 아기흡입시대(Baby Scoop Era)는 2차 세계대전 이후 40만 명 이상의 임신한 미혼여성의 아이들을 단순히 그들이 미혼모라는 이유로 입양을 보낸 시기를 말한다. [본문으로]


 


이 영상은 아이를 입양 보낸 생모들의 모임인 오리진스 미국의 프로모션 비디오입니다.
아이를 입양 보낸 엄마들의 증언을 통해 생모가 아이를 잃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국사회의 입양과정에서 생모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인 과정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습니다

 

 

 ※ 오리진스 미국 바로가기 :    http://originsusa.memberlodge.org/

 

 

 

지난 블로깅에서 미국의 입양단체가 어떻게 미혼 여성들을 설득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내용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얼마나 입양산업을 공격적으로 행하는지와 미혼 여성들을 대상으로 입양을 어떻게 홍보하는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입양자료들은 엄격한 심사를 거친 미래의 양부모들이 태어날 아기에게 사랑이 충만하고 안정된 가정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임신한 미혼 여성들을 안심시킵니다. 하지만 입양자료들이 엄격한 심사는 위의 어느 것도 보장할 수 없고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엄마가 아이를 직접 양육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어떨까요? 

또한 이 자료들은 입양사업 종사자들이 입양할 사람들에게 아이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해가 미혼 엄마들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 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입양 나우(Adopt-Now)>는 출산을 앞둔 엄마들에게 "우리는 입양을 원하는 고객이 사랑이 충만한 가정을 아기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엄격하게 심사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바라고 꿈 꾸는 것을 당신의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족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그 사이트에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홍보하고 있습니다. "호위츠 코스 (Hurwitz Kors)박사와 함께 하는 입양은 100% 성공을 보장합니다. 99%가 넘는 가족이 단 일 년 안에 아기를 입양했습니다." 

미국의 입양관계자들은 아이를 입양으로 잃기 쉬운 부모들을 찾기 위해 매년 젊은 임산부가 있는 웹사이트와 전화번호부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쓰며, 이것들을 병원이나 대형할인마트 혹은 임신한 여성들이 갈 만한 장소에 보냅니다. 때문에 많은 임신한 엄마들은 입양을 보낼 것인지, 양육을 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입양 네트워크 법률 센터(Adoption Network Law Center)>는 그들의 고객에게 "당신이 건강한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생모 아웃리치"을 제공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웃리치[각주:1]"에는 "매년 소비되는 생모 광고에 쓰이는 수백만 달러"”가 포함됩니다. 

입양 네트워크 법률 센터(The Adoption Network Law Center)의 뉴스레터 (2010년 3사분기) 에는 입양과 소셜네트워킹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아래와 같이 보여줍니다. "www.CourageousChoice.com 과 www.AdoptionSpacebook.com 을 통해서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장래의 생모들의 신상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통제를 받지 않는 그 웹사이트는 주에서 규제하는 많은 입양기관들과 다르게 ANLC는 주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예산지침에 구해 받지 않는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ANLC가 광고를 할 수 있고 입양기회를 당신에게 재빠르게 제공하며 좀더 공격적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이프타임 입양 센터(Lifetime Adoption Center)>는 웹사이트를 통해 이렇게 홍보합니다. "입양 시설 중계자로써 우리는 전국 규모로 산모 아웃리치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입양 기관과는 달리 지역에 구애 받지 않습니다. 우리 산모 아웃리치팀은 이러한 기회를 십분활용하여 전국에 배포되는 전화번호부와 광범위한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산모들이 있을만한 장소면 병원이든 어디든 라이프타임 브로셔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입양에 드는 평균 예상 비용은 12,000불에서 25,000불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전형적으로, 입양 대기 중인 커플은 중개인에게 자신의 정보와 그들이 원하는 아이에 대한 자료를 보냅니다. 그러면 중개인은 이러한 자료를 친생모들에게 전달합니다. 중간과정에서 중개인들은 양부모들이 만들어야하는 프리젠테이션 기술 등을 지도해 주고 조언도 해 줍니다. 예를 들어 어떤 색깔의 종이를 사용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종류의 사진을 선택해야 친생모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중개업자들은 이러한 서비스 비용들을 따로 받으면서 시간당 200불에서 350불의 비용을 청구합니다." 마크 맥덜모트(Mark T. McDermott, Washington, DC, January 7, 2005)와의 인터뷰. 데보라 스파(Debora L. Spare)의 베이비 비즈니스: 돈과 과학과 정치는 베이비 비즈니스를 어떻게 이끌고 있는가? (The Baby Business: How Money, Science, and Politics Drive the Commerce of Conception. 2006. Boston, Massachusetts,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인용


 

한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임신을 하게 되어 미혼모시설에서 지내는 미혼 여성 대부분은 입양상담을 받게 됩니다. 이 상담은 엄마들이 직접 양육하게 될 경우 보다는 입양을 보내면 좋은 점을 위주로 상담을 받게 됩니다. 상담을 통해 아이에게는 최고의 이익이 되는 삶, 미혼엄마에게도 자신의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을 이야기 하지만 이 내용은 사실과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입양은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인양 제시되지만 입양이 아이에게 항상 긍정적인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며 미혼엄마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어렵고 평생 동안 표출되지 못하는 슬픔으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용출처
- http://www.lifetimeadoption.com/  
- http://assetjunkie.com  
- http://www.adoptionspacebook.com/

이미지출처
- http://originsusa.memberlodge.org/






  1. <아웃리치> - 임신한 미혼엄마들을 찾아내는 서비스 [본문으로]




이 영상은 입양에 의해 삶이 바뀐 사람들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Adoption Crossroads의 홍보영상 입니다. 영상이 짧지만 입양을 보낸 엄마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입양 보낸 엄마들의 힘든 경험을 알리고 생모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이 영상을 나눕니다.

"세상에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습니다"


출처: Adoption Healing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4qD0mYVtxas 
        홈페이지 - http://www.adoptionhealing.com/

입양을 생각하고 계세요??.....(2)


(4) 법적 문제들



(5) 아이의 출생신고서


(6) 충격적인 일 후에 



내용출처- 오리진스 USA

미지출처- 오리진스USA, marcinmadison.wordpress.com, http://areacode682lookup.info/birth-certificate-texas

Written by Seul


입양을 생각하고 계세요??.......1편 




(1) 아이 양육을 위해 지원되는 자원들

-미국에서 지원하는 미혼 엄마를 위한 지원


(2) 입양기관 또는 변호사와 접촉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3) 공개입양과비공개입양


[##_http://mihonmo.tistory.com/script/powerEditor/pages/1C%7Ccfile8.uf@114A96374F13E5A12D1CF7.png%7Cwidth=%22570%22%20height=%2242%22%20alt=%22%22%20filename=%22Footer-B0525-920.png%22%20filemime=%22image/jpeg%22%7C_##]



2편으로 이어집니다. 


내용 및 이미지 출처- 오리진스-USA  http://originsusa.memberlodge.org/


written by Seul 

  


Carlynne, 미혼엄마의 입양 이야기





임신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끝마칠 무렵이었다아이의 아빠는 임신에 대한 사살을 몰랐으며 이미 도시를 떠났고 나는 그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다또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돈, 살수 있는 집, 그리고 직업에 대한 어떤 지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결국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복지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임신을 했을 때는

19살이었고 20살에 나의 딸이 태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기에 충분한 나이이니 딸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떠냐고 쉽게 말했다.

나이가 어린것에 대한 두려움과 혼외로 임신을 했다는 불명예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다른 부부에게 입양을 보내 내가 해줄 수 없는 모든 것을 채워줄 것이라는것과 모든 아이들은 두 명의 부모가 있는 가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만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딸 아이의 양부모는 그녀가 매우 어렸을 무렵이혼했다. 그녀는 양모 혼자로부터 키워졌는데도 아무도 그녀에게 다른 두 커플이 있는 가정에게 아이를포기하라고 제안하지 않았다


나는 임신한 동안 나이가  많은 한 낯선 여성과 함께 지냈지만 기본적으로 혼자였다. 나는 그녀를도

와 집안일을 했고 그녀에게 식사를 가져다 주었으며 휠체어를 탄 그녀와 함께했다. 내가 분만실에 들어갔을때 그녀는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그곳에서 나를 떠났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나는 홀로 고립되었다.

나는 의사를 아이를 낳을 때 처음 보았다. 분만을할 때 찢겨졌던 부분을  꿰매야 했는데 의사는 마취 없이 진행했다. 내가 그에게 소리를 지를 때, 그가 단지 내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지른 것 밖에 없었다. 나의딸을 담요에 감싸 빠르게 데려갔고 내가 나의 아이를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 뿐이었다. 사실상, 그들은 내게 딸이라고 알려주지도 않았다. 다음날, 내가 간호사로부터 우연히 알아낸 것이다. 내가 회복을 할 동안 나는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신생아실 건너편 방에 있었다.

매번 문을 닫아 간호사를 차단 시킬 때마다 간호사는 다시 와서 문을 열고 갔다. 문에는 빨간 판지에 검은 글씨로 “BFA”라고 쓰여진 사인이 붙어있었다. 이것과 똑 같은 사인이 나의 침대 머리맡에도 붙여져 있었다


3
일 뒤, 나를 CSS사무실로 데려가 입양동의서에사인을 하라고 했다. 그 방에는 나에게 한 박스의 티슈와 함께 종이를 건넨 여자를 제외하고는 나뿐이었다. 나는 흐느껴 울면서 사인을 했다. 나는 그밖에 내가 할 수 있는일을 알지 못했다


나는 입양으로 아이를 잃는 것을 죽음에 비유하곤 
했다. 사실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것은 좀 더 납치에 가깝다. 22년의 슬픔의 세월이 지나서야 나는마침내 나의 딸을 만날 수 있었다.


내용출처- Origins U.S.A. http://originsusa.memberlodge.org/

이미지 출처- catholicsocialservicesrapidcity.com,reusedomains.com,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mary0310&categoryNo=1,mysticmadness.com

written by Se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