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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0 목적이 이끄는 국가 The Purpose-Driven Nation by Kathryn Joyce

Kathryn Joyce: The Purpose-Driven Nation  By Kathryn Joyce  April 22, 2013

목적이 이끄는 국가 

<릭 워렌은 미국 스타일의 복음 전도와 입양이라는 복음을 르완다에 수출하고 있다.> -

Excerpted from The Child Catchers: Rescue, Trafficking and the New Gospel of Adoption

[The Child Catchers: Rescue, Trafficking and the New Gospel of Adoption]에서 발췌

2005, 당시 르완다 대통령 폴 카가메(1994년 르완다 대학살을 끝내는데 일조함. 논란이 많은 군사 지도자)는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의 교훈을 실천하게 하기 위해 그 저자인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를 초청했다. 워렌의 책은 세계 각지와 마찬가지로 르완다에서도 유명했고, 르완다 현지어로 쓰여진 복사본이 10만 권 넘게 배포되었다. 르완다에서의 프로그램은 워렌의 P.E.A.C.E. 계획에 대한 야망을 바탕으로 했다. 그 계획은 마치 선교 제국처럼, 세계적인 개발 작업의 최전선에 지역 교회를 배치하고, 정부의 사회 지원을 늘리거나 대체하기 위해 훈련된 교회 자원봉사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르완다 프로그램은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르완다의 지역 마을에 기초적인 의료를 지원하기 위해 교회에 기본 구급약품 등을 기부하는 상자 안 병원과 같은 계획 된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시민들을 돕고, 정부의 짐은 덜어주며, 동시에 의료를 제공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신뢰는 높여 대중에게 전도하는 세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르완다에서 새들백 교회 사업의 구성요소 중 하나가, 신도 2만명을 가진 워렌 목사의 그 교회의 주요 사명중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것은 고아 돌봄과 기독교인으로서 입양할 의무였다. 워렌 목사는 이를 단지 과제가 아니라, “우리는 무시할 수 없는 성경과 사회의 명령으로 설명했다.

폴 카가메: 로이터신문 발췌

 

단지 몇 달 만에 80만 명 이상이 죽은 르완다 대학살 이후, 가족은 파괴되었고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다. 이 아이들 중 일부는 노예와 비슷한 상황에서 친척이나 다른 국내 입양자에게 보내졌다. 고아를 데려간 르완다 가족 중 일부는, 폭력을 목격한 것과 가족을 잃은 것에 의해 트라우마가 있는 아동의 행동에 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많은 아이들이 대학살을 계기로 만들어진 새로운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르완다 양성가족진흥부 전 장관인 이념바 알로이시(Inyumba Aloisea)는 새들백에서 열린 고아를 위한 기독교인 연맹 2012년 회담에서 워렌에게 우리나라는 50만 명의 고아가 곳곳에 흩어져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1996년에 국가가 104개의 고아원을 운영했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목사님, 솔직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모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출처: http://dok.do/jCBgKe)

알로이시 장관이 새들백에서 연설을 했던 2012, 르완다는 고아원의 수를 약 34개까지 줄였다. 그리고 그 고아원에 있는 아동의 공식적인 수는 겨우 3,000명을 넘는 정도였다. “르완다는 전세계에서 고아와 고아원이 없는 첫 번째 국가가 되려고 한다.” 워렌은 무대에서 뽐내며 말했다. “르완다에 남은 고아는 3,050명이 전부입니다! 50만명 중에서! 어떻게 했는지 오 분 안에 가르쳐주십시오. 저는 모든 나라에서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전세계에서 기독교인의 수는 고아의 수를 한참 넘는다. 그래서, 문제는 실천하는 것뿐이다.

이는 새들백 교회가 이미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의 계획은 공동의 노력에 이용될 잠재적인 준비가 되어있던, 통합적이고 세계적인 기독교인 단체의 고아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독교인 입양 운동의 방안과 같은 전제에 기초한 것이다. 전세계 수억의 고아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고, 그 방안은 아마도 입양이라는 것이다. 이 해결책은 공식처럼 발표되었다. “전세계에서 기독교인의 수는 고아의 수를 한참 넘는다. 그래서, 문제는 실천하는 것뿐이다.” 2012년 회담에서 새들백의 에이즈와 고아 돌봄을 위한 계획의 설립자이자 감독관인 엘리자베스 스티프가 누가 고아 문제를 끝낼 것인가? 바로 교회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미국에는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를 합친 것보다 많은 교회들이 있어요.” 스티프는 내게 말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1년 동안 풋볼, 농구, 아니면 다른 스포츠 이벤트를 보는 모든 사람들보다 지난주 교회에 간 사람이 더 많죠. 그러니까 여기엔 노동력이 있는 겁니다. 전세계에서 도시 정부나 학교가 없는 곳이라도, 교회는 있을 거에요.”

카가메의 목표는 르완다를 중앙아프리카의 싱가포르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워렌의 영향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릭 워렌: 네이버인물정보 출처

개인적으로 독실하지는 않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카가메는, 새들백 선교사들의 유례없는 접근을 허용하는 대가로 새들백의 개입이 르완다로 투자자들을 유치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의 목표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일컫듯이 르완다를 중앙아프리카의 싱가포르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워렌의 영향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워렌은 카가메의 대통령 자문 위원회에 합류했고, 르완다는 첫 번째 목적이 이끄는 국가로 칭송되었다.

입양을 위한 국가 평의회의 척 존슨은 나에게 나는 그 전까지 정부가 종교적이든 아니든 어떤 사적 단체와 매우 가깝고도 개방적인 진정한 파트너가 되는 이런 종류의 상황은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미국 국무부가 미국 입양 로비스트들에게 부여한 발언권 등을 언급하며 여기 미국에는 공적인 파트너쉽이 많다. 하지만 르완다와 새들백의 파트너쉽은 르완다를 영어권의, 기독교 아프리카 국가로 만들려는 국가 건설 계획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카가메가 워렌의 복음보다 그가 가져올 비즈니스 연합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복음을 따라 수천의 자원봉사자들 또한 오렌지 카운티의 새들백에서 중앙 아프리카의 거대 호수 지역으로 왔다. 결국, 새들백의 P.E.A.C.E“P” 계획은 애초에 교회 세우기(Planting churches)”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P”계획이 르완다에서 특히 잘 퍼지는 메시지인 화해를 촉진하는 교회 세우기로 업데이트되었을지라도, 모든 화해는 하나님과의 화해에서 시작된다고 새들백은 주장한다.

(참고:  PEACE 전략이란 지역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의 연합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화합을 증진하는 교회를 심고(Plant churches), 섬기는 리더들을 세우고(Equip servant leaders), 가난한 자들을 돕고(Assist the poor), 아픈 자들을 돕고(Care for the sick), 다음 세대를 교육한다(Educate the next generation))

그 메시지는 또한 르완다가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였다. 가톨릭 지도자 중 일부가 대학살에 가담한 것이 밝혀지고, 피난처를 찾던 사람들이 도피를 위해 간 교회 안에서 살해당한 끔찍한 대학살로 가톨릭 교회들이 대학살의 현장이 된 후, 미국 스타일로 재 탄생한 기독교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르완다를 휩쓸었다. “우리는 대학살 전, 우리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인이었다는 통계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대학살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새들백의 P.E.A.C.E. 계획 르완다 사업의 사무총장인 에릭 무녜마나는 내게 말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독교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나이든 선교자가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은 아메리카에서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여기서 할 수 있어요.”

많은 르완다인들이 분명히 동의한다. 오늘날 르완다는 극도로 복음주의적인 국가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르완다의 공항과 호텔을 점령하고, 키갈리 빌딩의 지붕들은 거대한 십자가가 있다. 그리고 교회 신도라는 것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소개할 때 중요한 점이다. 효과는 어디에서나 명백하다. 이용객은 적으나 잘 운영되는 키갈리 공항에서, 르완다의 싹트는 호텔 산업 안에서, 훈련 받는 오클라호마에서 온 대졸 청년 선교사들은, 투옥된 르완다의 집단학살자를 돌봐온 나이든 오레곤의 부인과 자신들의 경험을 나눴다. “여기엔 많은 빛이 있습니다.” 청년 선교사들 중 한 명이 말했다. 나이든 선교자가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은 미국에서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여기서 할 수 있어요.”

출처: 르완다 대학살 때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돼 2004년 개봉한 영화 '호텔 르완다'의 한 장면. 부산일보

 

그러므로 새들백이 고아와 입양이슈를 우선순위로 한 것이 르완다에서 큰 영향을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티프를 포함한 새들백의 직원들은, 르완다의 아이들을 미국으로 입양한 첫 번째 가족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르완다 영국 국교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이며 P.E.A.C.E. 계획의 파트너인 엠마누엘 콜리니 대주교는 새들백을 3번 방문하면서 새들백의 명성이 개인입양신청을 도왔다고 믿고 있다. 콜리니는 릭 워렌은 유명합니다라며 그리고 르완다 정부는 새들백을 믿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르완다 정부의 공무원들은 양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할 지 확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국제적 입양 프로그램에 대한 2012 새들백 컨퍼런스 참여자의 지지와 르완다의 정책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었다. 그 컨퍼런스에서 워렌은 내가 고아 관리를 말할 때, 입양이 첫 번째고, 두 번째고, 마지막이다.”라고 연설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이 일관된 메시지와, 르완다의 입양 시장에도 거대한 이 일어날 것을 예고한 풍부한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입양은 크게 늘지 않았다. 대신, 르완다의 정부는 입양 과정에 대한 밀착 관리를 유지했고, 각각의 케이스를 면밀하게 조사하면서 입양 희망 부모가 그들이 왜 르완다의 아이들 중 한 명을 입양할 자격이 있는지 증명하도록 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여기 르완다에 남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르완다인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르완다는 외부인들이 아프리카의 가장 큰 성공 스토리로 부르는 꽤 조직적인 국가이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절망적으로 가난한 다른 나라의 혼란, 부패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이러한 통제의 수준은 근대 르완다의 상황에서 크게 놀라운 것은 아니다. 정부는 민족 구분을 금지하는 대학살 후의 법을 핑계로 야당 언론과 반대 의견을 진압하였고, 대선은 영국 주간지 The Economist에 의해 엉터리로 부정되었기 때문에, 대중의 삶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관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정권의 정책에서 나온 긍정적인 효과는 여러 다른 분야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르완다는 여성이 의회의 반을 차지하는 나라이다. 르완다에서 부패는 굉장히 드물고, 뇌물청탁은 신속히 잡혀 양쪽이 모두 수감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공동 청소 날에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르완다인들은 쓰레기를 줍게 되어있다. 

또한, 2011년 양성가족진흥부(MIGEPROF) 장관의 사무실에 방문하는 동안 분명하게 느꼈듯이, 르완다는 관료주의적인 절차의 엄격함이 부조리한 분위기를 띨 수 있는 곳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언덕꼭대기에 위치한 그들의 실용적인 사무실 복도에서, 까탈스러운 고위급 공무원들은 입양 사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요과잉으로 보이자 고개를 저었다. 양성가족진흥부의 해외정책을 맡고 있는 아동보호공무원 베닐드 우와바볘이는 대기 부모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가리키며, “우리는 거대한 수요를 가지고 있지만, 입양 가능한 아이는 매우 적다.”라며 항의했다. 대기 부모들은 대부분 미국인이며, 우와바볘이가 불신을 나타내며 특별히 언급했듯 한 명 이상의 아이를 원한다.

2011, 나라에서 오직 한 고아원만 아이를 입양 보낼 수 있도록 허가되었다. “희망의 집이라는 그 작은 고아원은 마더 테레사에 의해 세워진 가톨릭 단체인 사랑의 선교회가 운영하고 있고, 그 곳의 복도는 우리는 입양으로 낙태와 싸운다!”라는 큰 영문 포스터로 장식되어 있다. 이렇게 한 고아원만 입양이 가능한 것은 절차 상의 이유 때문이다. 르완다 고아원 중 희망의 집만이 경찰조사를 거쳐 아이가 법적으로 버림받았음을 신고하는 정해진 절차를 이행했기 때문에 그들은 입양 보낼 자격이 있었다. 르완다는 가족이 있는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것을 불허한다. 그리고 입양되는 아이들은 살아있는 친척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그들 가족관계를 조사해야만 한다. 규칙들은 엄격하게 실행된다. 캘리포니아의 어떤 커플이 고아원에서 만난 소녀를 입양하길 원했을 때, 그들은 거절당했다. 왜냐하면 정신병원에 구금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생모가 살아있고, 그것은 소녀가 엄마를 알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와바볘이는 르완다가 정책에 의해 국제입양을 가족이 재결합하거나 국내 입양자들을 찾으려는 노력이 고갈된 후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남기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이 곳, 르완다에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그 아이들은 르완다 국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르완다 문화 안에 머물고 르완다의 가치관을 배우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캠페인을 추진하는 이유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말한 캠페인은 국내 입양을 촉진하려는 정부의 초기 노력이다. 르완다의 영부인 쟈넷 카가메(Jeannette Kagame)의 임부토(Imbuto)재단의 후원 하에 이뤄진, '모든 아이들을 우리 자신의 아이처럼 대우하자'고 촉구하는 일련의 광고를 통해 대중들이 이 캠페인을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국제 기구들은 르완다의 메시지를 들었다. "우리는 현 양성가족진흥부 장관이 입양을 몇몇 경우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면서, 국가 간 입양을 전혀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양성가족진흥부와 일하는 UNICEF 소속의 다미엔 응가본지자는 말했다. "그들은 아이들이 불필요하게 입양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부분적으로, 르완다의 조심스러움은 좋지 않은 최근 경험들의 결과다. 1994년에 있었던 대학살의 혼란기 동안, 소수의 아이들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같은 유럽 국가로 보내어졌다. 아이들 중 일부는 그들을 살리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던 절망적인 부모들에 의해 양육권이 포기되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필사적으로 원아들을 구하려 했던 고아원 직원들에 의해 비상 탈출 기간 동안 그 나라들로 보내어 지기도 했다. 좋은 결과도 있었지만, 나쁜 결과도 있었다. 이탈리아로 입양된 몇몇의 아이들의 경우, 절대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르완다의 가족들과 다미엔 응가본지자를 포함한 정부 대표들이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접근했지만, 거부 당했다. 대학살 이후 초반에 그는 밀라노에 있는 아이들을 방문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우리가 아이들과 말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에, 우리가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가려고 노력해 봤지만 허사였다. 그 아이들은 10년 즈음 후면 그 곳에 정착해 있겠지만, 자신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아이들의 부모 중 일부는 살아 있고 자기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할 것"이라고 응가본지자는 말했다.

몇몇 정부 관계자는 개인적 이유로 입양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어떤 양모가 들은 바에 의하면, 한 정부 관계자는 그녀의 아이들을 대학살 기간 동안 잠시 잃어 버렸는데, 얼마 후 부룬디의 이웃 나라에 있는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찾았다고 한다. 그 엄마는 "그 정부 관계자의 입장에서는 공개 입양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만약 그녀의 아이들이 영원히 나라를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반문했다.

가족보호와 가정위탁에 힘쓰는 비영리 기관인 SOS Chidren's Village 르완다 지부의 대표 알프레드 무녠트와리는 학살 기간 중에 이뤄진 즉흥적 입양이 많은 르완다 사람들의 의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데 동의했다. 2006년에 그는, 학살 기간 부모와 떨어진 후 7살 때 독일 가족에게 형제와 함께 입양되었던 19살 여성의 보호자의 연락을 받았다. 그 당시 아이들과 홀로 남은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서 그는 독일인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했다. 입양된 딸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되찾고자 무녠타와리의 보호 아래 르완다로 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입양 때문에 부모가 이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엄마는 '아이들을 팔아 넘긴' 아빠를 비난했고 그의 이웃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녀의 엄마와 이웃들이 "당신은 끔찍하고 어리석다"고 말했다고, 무녠타와리는 회상했다. "차라리 소를 팔지 어떻게 아이를 팔 수가 있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돌아와 자신의 오명을 씻어 줄 때까지 마을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 "이 이야기는, 종종 아이들이 입양 갈 수 있고 그들은 입양갔을 때 향수병을 앓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무녠타와리는 내게 말했다. "그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잘 제공받는다'고 말하겠지만, 누구도 그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지는 못 한다".

무녠타와리는 "일부 국가에서는 입양에 호의적이다. 그러나 르완다에서는 오직 신만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결론 내리면서, ‘르완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나라를 떠난 후에 잘 지내는지 여부를 알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르완다 사람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삶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은 이렇게 처참한 상황에 처할 수 있고, 내 아이들을 교육시킬 능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내일은 더 나아질 수도 있다.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내 아이를 데려가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내 아이들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말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