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ne’s Adoption Story – Newmarket, Ontario, 1982

1982, 14살 나는 임신을 했다. 엄마는 내 임신을 처음 눈치챘을 때, 우리가너무 늦기 전에 그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의사와 진찰 예약을 잡았다. 나는 내가 임신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외면한 채, 병원에 가지 않았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진찰을 받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진찰을 받게 되었고, 의사는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나의 임신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나는 임신이었고 그것을해결하기에는너무 늦었다.’ 그래서 나는 출산 전까지 시골에 계신 이모와 삼촌과 함께 살도록 보내졌다. 일단 아기를 낳고 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나의 가족들의 계획은 그랬다.

이모가 아는 의사를 통해 개인적으로 입양을 보내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싶은 내 열망에 대해 말할 때마다, 이기적이고, 미성숙하고, 애정이 없고, 잔인하다는 말을 들었다. 나조차도 아이에 불과했고, 나는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내 아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나이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 아닌지에 관한 결정을 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들 했다. 그 결정은 나의 엄마에게 달린 것이었다. 나는 약자였고, 엄마는 나의 보호자였기에, 엄마는 그 결정을 내릴 책임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나는 엄마에게 그 결정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도 꺼낼 수 없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고 어리석은 실수가 나의 삶, 나의 미래를 망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것이 나를 위한 일이었음을 납득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사실은 엄마의 가족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그들에게 불명예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할아버지와 나는 엄청나게 가까웠고, 모든 손주들 중에서 내가 가장 예쁨 받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안 할아버지는 내가 더 이상 손녀가 아니라고 했고, 나와 의절했다. 그 후 18년 동안 모든 가족 모임과 파티에서 할아버지는 나를 무시했고, 투명인간 취급했다.

우리 엄마, 동생, 이모, 삼촌, 의사와 사회복지사들은 내 아이를 포기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 옳은 일이라고 끊임없이 말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를 위해 옳은 일을 해야 하며, 내가 줄 수 없는 모든 것을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정을 찾아줘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나를 확신시켰고, 나도 스스로 확신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절대로 그것을 믿을 수도 없었고,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15세가 되던 1982 10 6, 내 딸은 온타리오 뉴마켓의 요크 컨트리 병원에서 태어났다.  의사는 내가 내 아이를 만지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보는 것조차 금지했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를 보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나는 우리가 남은 삶을 함께 보내지 못할 것이라면, 적어도 함께할 수 있는 매 순간만큼은 가치 있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이모는 내 편을 들어주었고 내게 아이를 데려오도록 했다. 그 후 4일 동안 나는 아이를 안고 흔들며 얼렀고, 뽀뽀하고 노래를 해주고 젖을 먹였다. 나는 아이에게 평생 동안 지속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귀한 시간을 낭비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아이에게 꼭 붙어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기 위해 병원에 왔지만, 손녀를 만나는 것은 거부했고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항상, 엄마가 실제로 그렇게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가 마음을 바꿔서 우리 세 명이 함께 병원을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딸 없이 병원을 떠나던 그날, 나는 죽었다.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이전의 나, 내가 믿어왔던 것, 내가 신뢰한 사람들은 그 즉시 없어져 버렸다. 내가 돌아갈 평범한 삶은 없었고, 나는 사라졌다.

나는 입양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에게 엄청난 감정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내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해왔지만, 그들이 생모가 아닌 한 아무도 내가 경험한 것을 실제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를 입양으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상처이다. 선의에서 입양을 지지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딸을 위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와 가족들은, 실제로는 딸들을 평생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게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하자면 엄마와 아이를 떼어놓는 것은 엄마의 삶에 영원히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그 경험으로부터 평생 동안 결코 회복될 수 없다. 그녀는 깊고 가슴저린 공허함과 그녀의 삶에서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갈망과 함께 살아간다.

다른 아이를 가지는 것이 이 감정을 없애지는 못한다; 상처와 고통이 크게 자라도록 할 뿐이다. 그녀가 다른 아이와 함께 경험했던 각각의 중요한 순간들에는, 그녀가 잃어버린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 모든 특별한 순간과 사건들에 대한 깊은 슬픔이 따를 것이다. 엄마의 마음에는 그녀가 낳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한 특별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고, 각각의 아이들은 그들만의 특별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랑과 기쁨과 웃음이 그녀의 마음을 채우는지에 관계없이, 늘 빈 공간이 있는 것이다.

그녀의 일부분은 항상 그녀의 아이와 떨어지는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있고, 그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그녀의 아이를 안고 만지고 어르는 것을 그리워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않으면서 보낼 날은 그녀의 일평생 단 하루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신에게 그녀의 아이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잘 보살펴달라는 특별한 기도를 하지 않고 지나는 밤 또한 단 하루도 없을 것이다.

나는 십대의 임신을 장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일어나기 마련이며,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가정과 사회가 십대 엄마들에게 '만약 그들이 아이를 걱정하고 사랑한다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옳은 일을 해야 하고,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납득시키려 하기보다는 '지지와 사랑, 그리고 보살핌'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사회는 십대 엄마들에게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 정상가족, 번듯한 차와 명품들이 있는 큰 집임을 납득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십대 엄마들에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엄마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감히 설득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사실 아이들이 행복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엄마와 아이 간의 유대는 끊어져서는 안 된다. 엄마와 아이를 떼어놓는 것은 학대이자 고문이며, 둘 모두 이로 인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텅 빈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없고, 행복한 결말은 있을 수 없다.

엄마와 아이의 재회가 그 허전함을 채울 수 있을지라도, 그들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채우기 위해서 여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쌓기 위해 많은 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 또한 가족들에게 아이를 소개할 때, 편안하고 알맞은 역할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가족 모두 애써야 할 것이다.

내 딸 없이 퇴원하던 날은 내 죽음의 날이었다. 나는 결코 트라우마로부터 회복되지 못했고, 그 후 21년 동안은 나는 유령처럼 살았다.

만약 당신의 딸이 임신했다는 비밀을 털어놓는다면, 딸에게 등돌리지 말라고 모든 부모에게 강력히 충고한다. 딸과 당신의 손주를 위해 그 자리에 있어주어라. 그들이함께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 개인적인 경험에서 말하자면, 15살 소녀에게 아이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이를 키우게 하는 것보다 더 그녀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다.


원문 : http://www.originscanada.org/resources/mothers-stories-adoption-across-canada/adoption-ontario-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