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모가 이야기하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블랙홀


1980년 나는 막 태어난 나의 아들을 입양으로 잃었다. 나는 “잃었다” 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는 당시 17세의 나이로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부모님과 정부의 사회복지사가 처리해 버렸다. 심지어 그 사회복지사는 나의 약혼자가 그의 새로 태어난 아이를 보는 것조차  못하게 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극복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 이라고, 그리고 “내 인생을 살라고” 말했다. 내 아들의 양부모가 될 사람들이 내 아들을 병원에서 데려간 것을 알게 된 그날 오후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불임부부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줬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고 내가 곧 그것을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쇼크상태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그 후 몇 달간 학교 일로에 집중하며 그 고통을 묻어버렸다. 10달 뒤에 쇼크 상태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그저 “괜찮다”…라고만 생각했다. 입양 지원 단체는 그들이 한다고는 하지만 나의 고통을 완화시켜 주지 못했다. 술로 그 고통을 잊어 보려고 했던 또 다른 일년과 인생을 끝내려는 몇 번의 시도 후에야 정신과에 가기 시작했고 그 치료는 일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 의사와 나는 상담이 나를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의 모든 감정을 억누르기에 충분히 강한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 약은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모든 것을 나의 속마음으로부터 “얼려서” 고통 속에 묻었다. 약은 효과가 있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을 얼려버렸고 고통을 묻어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겨우 하루하루를 살 수 있었고, 아들을 찾는 것이 허락되는 19세가 되기를, 마치 형을 마치고 감옥을 나가는 사람처럼 손꼽아 기다릴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아들을 다시 찾는다면, 그 애가 건강하게 살아있고 행복한 것을 알게 된다면 나의 고통은 끝나고 진정한 행복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잘못 생각했었던가! 그의 존재 자체로 인한 행복, 그렇다. 그러나 내가 슬픔과 상실을 보지 않으려고 둘러 쌓은 회색 콘크리트 벽들은 무너져 내렸다. 내면으로부터 고통이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그것이 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을까?  아니다, 나의 아들은 어린 시절 내내 그의 양부모에게 끊임없이 학대당했었기에 내가 느끼는 고통은 그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입양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기 때문에 내 자신이 슬픔과 상실로 심각하게 황폐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상실로 인한 가혹한 슬픔으로 인해 결국 4개월 동안 4번이나 나의 내장이 꼬여서 응급병동에 호송되었다. 그 끊임없는 슬픔은 나의 신경계통을 매우 피곤하게 만들어 슬픔에 지쳐 나는 다시는 풀타임으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입양 산업의 기관의 반응은 어땠는가?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여성이다. 이 여성은 흠이 있다.” “이 여자는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고 그것은 그녀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죽었다면, 그 슬픔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이다. 아이를 입양으로 잃었을 경우에 우리의 아이가 여전히 살아있는 동안 그곳에 슬픔을 해결 할 수 있는 가능한 해결책은 없다. 그리고 살아 있는 슬픔과,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상실은 매일매일이 살아있는 악몽이다. 이것이 바로 입양기관과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절대 인정하지 않는 입양의 현실이다.




이미지출처-theocentric.com, picturesof.net, makefive.com
내용출처 - http://www.exiledmothers.com/index.html